‘지방자치의 화두를 던진 제헌헌법’

국내 정치사에서 지방자치가 처음 실시된 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 등장한 장면 정부로 볼 수 있겠지만 처음 시도된 것은 제헌헌법 제정을 통해 명문화 한 1948년을 최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제헌절(7월17일)이 시작된 1948년도 제헌헌법 공포 당시에는 명목상이나마 지방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했었다.

이는 일제하 항일운동 과정에서 국제정치와 행정제도를 습득한 지식인들이 한시라도 빨리 국내정치를 안착시키고 싶은 의지와 선진정치제도를 국내에도 도입하고자 하는 생각이 부합된 결과로 보여진다.

이에 따라 1948년 11월17일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처법 제정(법률 제8호)을 통해 6개월의 한시법으로나마 지방행정에 관한 각종 법규를 일괄 규정해 미군정으로부터 해방후 3년여 동안 계승된 지방제도를 개혁하고자 읍.면장의 주민직선제를 규정했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

이승만과 미군정의 정치적 이해가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방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 분권화를 통한 개혁적인 시도는 12여년의 방황기를 거쳐 한시적으로나마 1960년 말에 지방선거를 통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됐다.

‘지방자치의 시도와 암흑의 세월 12년’

1948년 이후부터 1960년까지를 암흑기로 보는 것은 집권당의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지방자치가 휘둘려 왔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이승만 정권의 끊임없는 재집권 욕심이 반대파 세력에 대한 당근과 채찍의 도구로써 지방자치를 이용해 온 시기로 볼 수 있겠다.

그때를 살펴보면, 1949년 7월4일 지방자치법 제정.공포(법률 제32호, 8. 15 시행)를 통해 지방자치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 법을 통해 서울특별시·도와 시·읍·면이라는 행정제도를 나누고, 서울특별시장, 도지사는 임명제, 시·읍·면장은 지방의회 간선제로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방의회가 구성되기까지 지방의회의 의결을 요하는 사항은 상급기관이 승인키로 하고 시장은 대통령이, 읍·면장은 도지사가 임명키로 했다.

이후 1952년 4월25일 시·읍·면의회 의원, 5월10일 도의회 의원 선거 실시해 제1대 지방의회를 구성했다. 1956년 2월13일에는 지방자치법 제2차 개정을 통해 시·읍·면장을 주민직선제로 하기로 하고 지방의원과 시·읍·면장의 임기를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이렇게 당시 4년간을 살펴보면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지방자치가 실시돼 온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속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1952년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기이다.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전쟁 와중에 선거가 실시된 것에 대해 의아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국회가 야당과 반대파의 주도하에 있어 재집권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했었다.

이를 뒤집기 위해 나온 대안이 지방선거였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국내정세의 불안과 치안안정을 구실로 해 지방의회를 실시하고 국회를 무력화 시키고자 뒤늦은 지방의회 선거라는 카드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갈 수 없었다. 정권이 원하는 단체장이 지방의회에서 불신임을 받고 의원과 단체장간의 이권거래가 성행해 지방자치에 대한 실효성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선거의 실시는 야당이 지방에서 득세를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승만 정권은 1958년 12월에 다시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다시 임명제로 하기로 하고 1960년 4.19혁명에 의해 정권이 무너지기 까지 강력한 중앙집권제도를 실시하게 됐다.

‘정치적 집권 목적에 휘둘린 지방자치제’

1960년 11월1일 지방자치법 제5차 개정을 통해 서울특별시장.도지사, 시.읍.면장 등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키로 했다.

1960년 12월12일 서울특별시와 도의회 의원, 12월19일 시.읍.면의회 의원, 12월26일 시.읍.면장, 12일29일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 선거가 일제히 실시됐다.

이것은 해방이후 방황했던 정치제도를 권력의 분권화로 재분배하고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를 완전하게 정착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1년을 넘지 못했다. 1961년 5.16 쿠데타에 의해 단명했기 때문이다.
군사쿠데타 세력은 전국의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모든 의결사항을 상급 지방자치단체장이 집행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30여년간의 세월은 제왕주의적 중앙집권제 시기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체제를 권위주의적으로 바꾸었고 국정방향을 국가주도에 의한 경제발전에 최우선으로 두었다.
하지만 정치.사회.문화 등의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긴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산업화가 만든 정치제도 개혁 바람’
‘또다시 정치바람에 흔들린 지방자치제’

박정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산업화는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들의 의식 향상을 가져왔으며 국가주도형 국정운영에 대해 항거하는 움직임을 형성했다.

이후 등장한 전두환 정권 말기에는 시민세력과 야당에 의해 지방자치 제도의 필요성이 끊임 없이 요구됐다.
이에 따라 1987년 6.29 선언을 한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 의해 지방의회 구성안이 제기 됐으며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게 됐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이후 야당과의 협상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민정당은 이듬해인 1988년 3월 지방자치법과 지방의원 선거법을 단독으로 변칙 처리했다. 그해 4월에 공포된 부칙에 따르면 시·군·구의회는 1989년 4월까지 시·도의회는 1991년 4월까지 구성키로 했으나 단체장 선출시기는 결정하지 않았다.

당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성장한 민주주의 상황임에도 여·야간의 끊임없는 주도권 싸움에 지방자치제가 휘둘려 왔다.

1989년 4월까지 구성키로 한 시.도의회가 이행되지 않자 정치권내의 자기비판에 의해 12월 지방자치법이 여·야간의 협의를 통한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3당 합당이라는 합종연횡에 의해 지방자치제는 또다시 광야로 던져졌다.

우여곡절 끝에 91년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됐지만 단체장 선거는 기약되지 않은 변칙적인 제도일 뿐이었다.
이렇게 기나긴 방황을 거듭해 온 지방자치제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 당선후 1994년 단체장 선거를 비롯 4대 지방선거를 1995년 6월27일에 실시한다는지방자치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킴에 의해 드디어 정착하게 됐다.

내년 6월2일은 지방자치제도가 한국에 정착한지 15년째를 맡는 해이며 전국 동시지방선거로는 5회째를 맞이하게 된다. 

보령시청전경

/주간보령 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