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령경찰서 해수욕장지구대 정현로 경관

서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 해수욕장지구대는 자살 의심자, 미성년자를 찾아달라는 신고가 비교적 잦은 곳이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을 도피했다가 바다를 보고 생을 마감하려는 충동을 느끼고, 젊음의 치기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한번쯤 들르고 싶어 하는 드넓은 겨울바다가 있는 곳이다.

“경찰양반, 우리 영감 좀 찾아줘, 아침 10시에 집을 나가서 들어오질 않아…”

찬바람 가득한 겨울 어느날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해수욕장지구대를 찾아 오신 할머니가 내 두 손을 잡고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올해 69세이신 할아버지는 지체장애 3급에 청각장애가 있어 귀가 어두우시고 걸음도 불편하시다고 한다.

또, 머리 수술을 하신 후 기억력이 나빠져 가끔 집이 어딘지 잘 알지 못하신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찾지마, 붙잡지마” 라는 말을 하고 나가셨는데, 평소 자주 이런 말을 해서 금방 다시 들어 오실거라 생각했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추워지는데 돌아오시지 않자 결국, 할머니가 지구대를 찾아오신 것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동네 인근을 찾아 보다 지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두 손이 차다. 겨울 바다처럼…

일단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순찰차에 할머니를 태워 집 주변부터 수색에 나섰다. 동시에 지구대장에게 보고해 182에 접수하고, 관내 수배를 한 후 타격대 지원을 요청해 함께 인근 선산 수색에 나섰으나 할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겨울밤은 더욱 깊어져갔다.

또 어디를… 수색이 난관이 부딛힐 즈음, 대천해수욕장에서 15km쯤 떨어진 고향, 웅천읍 독산리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군 시설이 확장하는 바람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어디든 가능성이 있는 곳은 뒤져보아야 한다.

“우리 영감이 귀가 잘 안 들려, 그래서 영감에게 말할 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치게 돼. 영감이 그걸 참 서운해 했어… 이렇게 늦을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혀 보내는 건데…”

순찰차가 독산리를 향하는 동안 할머니는 수많은 자책의 말씀을 쏟아내신다. 할아버지가 귀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잘 못인 양.

손전등으로 독산리 마른 잡풀 무성한 시골길을 헤집으며 할아버지를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따금 자리한 농가와 넓은 들녘, 횡한 겨울산만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럴 땐 뾰족한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찾아 볼 수 있는 데까지 후회 없이 최대한 살필 수밖에… 이 근처에 계실 것이라고,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때 고향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비닐하우스 한 개동이 보였다. 비스듬히 열려진 비닐하우스 출입문에 풀어헤쳐진 자물쇠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렇게 찾아 헤매던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앉아 추위를 피하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경찰 잠바라도 덮어드릴 마음으로 다서 서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얼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지금까지 참아왔던 할머니의 울음보가 터졌다. 커다란 고함도 함께 터져 나왔다.

귀가하는 길. 할아버지는 “고속도로로 걸어오니까 금방이던데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듯 말씀하시는데,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고속도로로 15km 가량을 걸어가셨는지…

두 분을 무사히 댁까지 모셔다 드린 후 바닷가 앞에 순찰차를 잠깐 세웠다. 어둠 속에 바다는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요란하다. 집을 나설 때마다 ‘찾지마, 붙잡지마’를 습관처럼 말씀하시곤 했다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짐이 된 자신의 노년이 미웠을 거다.

할머니 또한,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았기에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생활하셨을 거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터져버린 할머니의 눈물과 행여 할머니의 걱정이 늘까봐 그 추위에 떨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함께 하신 40여년의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따금, 이 두 분이 궁금해 질 것 같다. 과일이라도 사들고 나는 이 노부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왠지 모를 웃음이 입가에 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