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추석이 되었다
명절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숨겨진 채 긴 연휴와 함께 추석이 다가왔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고 시누이들과 눈도장까지 찍은 후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짧은 외출로 병원에 들어가실 때마다 매번 아쉬워하시던 아버지를 이번 긴 연휴에는 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해가 갈수록 아버지 숨소리가 가쁘게 들린다.
아버지 영화 보러 같이 가요.
영화는 먼 영화. 하면서도 영화를 본지가 아득히 먼 옛날인 듯 기억을 더듬으신다.
아주 오랜 옛날에 한번 봤다고도 하신다.
미리 표를 예매해 놓고 한 시간쯤 시간이 남으니 드라이브하자고 말씀드렸더니 “미리 들어가야 좋은 자리를 잡지 않느냐”며 지금부터 들어가서 자리 잡자고 하신다.
옛날에는 한나절 넘게 부터 가서 자리 잡아야 좋은 자리를 앉을 수 있었다고…….
영화는 무슨 영화를 보냐고 하시면서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 것이 금방인데 그 말을 하시는 아버지 목소리에서 어떤 기대감,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자리가 미리 정해져 있어서 시작하기 전에 가면 된다고 했더니 그럼 되었다면서 '천천히 가도 되겄그만.'하신다.
극장에 들어서면서 아버지께 여러 번 말씀드렸다
혹시 영화 보는 중에라도 앉아 있기 힘드시면 집에 가자고 하시라고. 그럼 아무 때나 나올 수 있으니 꼭 말씀하시라고 했다 아버지는 “두 시간을 못 앉아 있을라고.” 하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영화 보는 내내 힘드실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왔다.
영화는 올 추석에 개봉한 ‘남한산성’이었다.
6.25를 겪으신 아버지께서 이해하기도 좋고 추억하기도 좋으실 거 같아서 선택했다.
오는 길에 아버지께 영화 재미있었는지 여쭤보니 “테레비에서 다 봤던 내용이라면서 화면이 크고 사람도 크게 나온 거 말고는 테레비랑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하셨다
큰 감동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큰 반응이 없으셔서 영화 보는 내내 힘이 드셨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땐 그랬는데 나중에 큰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랑 추석 지나고 밥을 함께 먹으러 갔는데 걸람이가 영화 보여줘서 겁나게 잘 봤다고 열 번은 하셨다고...... (아버지는 내 이름을 걸람이라고 하신다) 당장은 힘들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 행복했던 기억으로 되새김 되는가 보다 싶은 마음에 아버지랑 영화관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같은 침대에 누웠다.
그동안은 연휴기간이 짧아서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도 하룻밤만 주무시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셔야 했었다.
친정 언니들이 와서 함께 잠을 자야 했기에 아버지랑 내가 단둘이 잠잘 기회는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는 장작 10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시고 싶다고 하실 때까지 함께 집에 있을 생각을 했는데 언니들이 하룻밤 자고 서울 간다고 하는 날 벌써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나는 왜 벌써가시냐고 며칠 더 계시다 가시라고 하면서 함께 보내게 된 시간이다.
그동안 할 얘기가 많았는지 병원에서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 하고 하셨다 자고 일어나면 어젯밤 함께 잠잤던 동료가 죽었다고 없고, 금세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들어온다고 하시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갈 곳이 딱 한 곳 밖에 안 남은 당신의 삶을 이야기하셨다. 그러시다가도 내년 봄에 몸이 좀 좋아지면 농사를 지어야 하겠다고 하신다.
그러실 수 있을까? 정말 그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구십 살 까지만 살고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아버지는 구십을 넘기시니 이제는 백세시대이니 백 세 까지는 사셔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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