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령예지회 최은순

깊어 가는 밤, 어제도 오늘도 이웃집 아이는 목청껏 잘도 운다.
이웃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손자 울음소리로 들려 안쓰럽고 걱정스럽다.
‘아이가 어디가 아픈 걸까? 집에 아무도 없는 걸까?’ ‘아이를 재워놓고 나간 사이 잠에서 깨어 텅 빈집에 혼자 있어 무서워서 우는 걸까?
아이의 울음소리에 신경이 쓰이다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나면 안심이 된다.

1년 전만 해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올 때나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어노는 소리가 들려 올 때면 ‘지금이 몇 신데 왜 아이들을 저렇게 울리는 걸까? 이웃집 사람들도 생각해줘야지…….’ 하며 무시로 들려오는 아이 울음소리에 마음이 쓰였었다.
그러나 1년 전 손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로는 ‘아이가 계속 저렇게 목 놓아 울어대니 저 아이는 나중에 가수가되겠네~~밤늦게 까지 저렇게 뛰어 노는걸 보니 운동 선수가 되겠네’하며 손자를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손자도 혹시 저렇게 울어 대며 떼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놀다가 장난감 던지고 부딪치는 소음으로 위, 아래층 이웃 분들께 폐를 끼치고 있을 지도 모르지. 라는 생각을 하며 손자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게 사뭇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易地思之(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처지(處地)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 이란 뜻으로, 세상일이란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에서 생각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일도 없는 것 같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나의 생각이 변화되어 갔다.

1년 전만해도 친구들이 모임에 손자를 돌보느라 발이 묶여 꼼짝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노라면 친구를 딱하게 생각하며 이담에 나는 손자에게 매이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모임에 나온 친구들이 핸드폰의 배경화면은 물론 갤러리를 온통 뒤덮은 아이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면 ‘앞으로 손자 자랑을 하려면 찻값내고 자랑하기’ 라고 조크를 주기도 했었다.

모임 하는 중에도 영상통화를 하며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들보다 더 재롱을 떠는 친구들을 볼 때면 평소에 사려 깊던 친구가 왜 저리 손자 바보가 되어 버렸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손자가 태어난 이후 나는, 딱해 보이던 친구들보다 더 딱할 정도로 수시로 영상통화를 하며 손자의 재롱에 손자바보가 되어버렸다.
정말로 내가 이렇게 변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변해가고 있는 것은 단지 손자에게 쏟는 사랑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둘러보는 마음도 변했다.

어느 인디언 마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운다고 한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 하면 마을 주민들이 내 자식처럼 돌봐 주겠는가.
혹여 손자가 아프기라도 하면 가족과 친척들, 이웃 사람들까지 깊은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의 건강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

나도 우리 손자를 돌보며 다른 집의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불편함과 아픈 곳은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인디언 마을의 풍속처럼 자식을 키우는 마음은 이웃도 내 자식 키우듯 부모와 같은 마음이리라.

얼마 전, 우리의 삶을 소소한 행복 속으로 이끌어가는 손자가 첫돌을 맞이했다.
첫돌을 맞이한 사랑하는 손자의 앞에 펼쳐지는 인생의 길이 꽃길만 걷게 하고 싶음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나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다.
지식이 많은 똑똑한 사람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평탄하고 순탄한 길을 허락해 달라기보다는
어려움과 맞서 싸워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기도하기 보다는 위험에 처해 있더라도 겁내지 말고
강하고 담대함을 주셔서 잘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사랑은 순리대로 낮은 곳으로 내리사랑으로, 자식을 향한 자식바라기에서 이제는 손자를 향한 손자 바라기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