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문학보령예지회-김정자-

선운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고창에서 꼭 먹어야만 힘이 난다는 풍천장어 집들이 즐비하다.
풍천강으로 가는 중간 쯤에 왼쪽으로 아주 멋스런 간판이 보인다. “꺼먹 고무신” 간판은 도로에서 보이는 바깥 쪽에 있는 데 가게는 안 쪽으로 있어서 이 간판을 따라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한다.
가게 입구 위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나무 간판이 눈길을 잡는다.
“삶과 인생”
여보게 친구 인생은 새옹지마라네!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여
맛과 멋을 찾아 여행이나 하세!
-꺼먹고무신 생각- (강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잡아내는 주인장의 멋스러운 미소가 내 발길을 냉큼 사로잡았다. 외관만 보면 장어집이라기 보다는 왠지 전통 찻집같은 분위기다. 내부로 들어서면 느낌이 보다 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장식되어 그릇도 모두 놋쇠 그릇으로 전통스러움을 전했다.
장발 헤어를 뒤로 고무끈으로 묶으신 와일드 스타일의 주인아저씨의 컬렉션 인테리어에 기대감이 더 해지며 상차림에도 호기심을 갖게 했다.
기대에 부풀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입구에 나란히 놓여있던 꺼먹고무신 세 켤레........
세월 속에 잃어버린 검정고무신의 추억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까만 고무신, 하얀 고무신. 어느 정도 연륜을 가지고 있다면 고무신에 관한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시냇가에서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던 일, 모래밭에서 고무신으로 기차놀이를 하던 일 그리고 고무신으로 엿 바꿔 먹던 일 등…….
요즘은 신발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모양도 다양하고, 기능성을 갖춘 수많은 신발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아직도 한참을 더 신을 만한 신발들이 여기 저기 버려지기도 한다. 물론 재활용 수거 통에 고이 넣어 주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기 일쑤이다. 닳아서라기보다는 그냥 싫증나서 버려지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1021년 전후로 추정된단다. 당시 일본 고베에서 수입된 고무신은 호모화라 하여 바닥창만 고무이고 그 외는 가죽이나 천으로 한 것이기에 경제화, 경편화로 불렀단다. 이 경편화를 한국의 비 많은 풍토와 질펀한 길, 농사 등 일상 생업에 알맞게 한국화 한 것이 고무신으로 대륙호모공업소에서 만들어 내었단다.
이제 고무신은 역사속의 신발이 되었지만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 가사가 귓전을 울린다.
“이른 새벽 직행차 고동소리에 고무공장 큰아기 벤또밥을 싼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신발 붙혀 갈세 큰아기 젓가숨이 자주 뛴다오.
얼굴 예쁜 색시래야 신 잘 준다고 감독 앞에 헤죽헤죽 아양이 밑천
고무공장 큰아기 세루치마는 감독나리 사다주신 선물이라나.
치마 속에 벤또 끼고 공장 나서면 동천에 반짝반짝 별이 마중해“
“고무공장 큰아기”란 유행가 가사인 데 나의 세대 때 부른 노래와는 가사가 조금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해 보인다.
여름날 맨발에 고무신을 신으면 땀에 젖어 질척거리던 고무신, 그래서 신발 바닥에는 풀잎이나 짚을 깔아서 신기도 했다.

그 고무신은 물고기 잡이 어항대용이 되었고, 뒤축을 접으면 근사한 배가 되었고 신발 멀리 보내기에 훌륭한 놀이 기구도 되었다.
산으로 내 달리다 찢어지면 흰 실로 꿰매 신기도 하였고, 그리고 바닥이 들어날 때면 엿장수 리어카에 실리며 달콤한 엿을 선물하던 마지막까지 몸을 헌신하던 물건이었다.
요즘은 고무신 신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가 없다. 어쩌다 스님이나 점잖은 노인분이 신는 것은 보았어도 젊은 사람들은 꺼먹고무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것이다.
예전 한 때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절 너도 나도 고무신이 인기였고 검정 고무신 질기기가 고래심줄 보다도 더 질기다던 말표,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엿장수 오던 날 마루 밑에 곱게 모셔둔 할머니 흰 고무신 가져다 엿 바꾸어 먹고 죽지 않을 만큼 맞던 동네 친구들 그 숱한 고무신에 얽힌 이야기도 이제는 잊어진 추억의 이야기가 되었다. 주변의 물상들을 가만히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추억 속에서 존재하던 것들이 많이 있다. 요즘처럼 물질이 흔한 세상에서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란 쉽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추억이란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 가끔은 추억속의 물건 하나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자신(我)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기에 나는 늘 추억이란 상자를 고이고이 보관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