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선 박사 삼성제약대표/(전)관세청장

우리 한민족의 오래된 명절, 추석(秋夕)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음력 8월 15일 추석, 한가위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농작물의 풍년, 흉년은 자연과 날씨에 의존했습니다.
과거 인류는 천신과 용황신, 조상신 등이 날씨를 다스린다고 믿었고, 가을철 농작물 수확이후 하늘신 등에 감사를 드리는 행사는 가장 큰 축제였습니다.

중국은 음력 8월 15일이 “중추가절(仲秋佳節)”로 국가적인 명절입니다. 서양에서도 가을철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은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상봉해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커다란 명절입니다.

동서양의 공통된 “추석, 중추가절, 추수감사절”은 농작물 수확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대가족사회, 농경 사회의 커다란 축제였습니다. 현재 산업사회, 도시사회, 핵가족 사회에서는 추석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산업사회의 추석은 농작물 수확의 감사 축제가 아니고 공휴일 개념으로 변화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해외여행, 국내 온천여행 등을 즐기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 집조차도 찾지 아니하는 세태로 변하였습니다.

신세대 며느리들이 농촌에 있는 시부모 댁에 가기 싫어서 추석날 당직을 자원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생각납니다. 어른들은 추석 절에 생활비 지출이 많아서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부부싸움이 많다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현대 산업사회의 추석은 기업하시는 분은 직원들 추석 보너스 지급 걱정, 귀향객들은 최악의 교통난, 선물 준비등으로 축제의 기쁨보다 정신적, 경제적 스트레스가 많은 명절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난하고 어려웠던 농경사회 시절 40년, 50년전 추석 기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석에 대한 추억은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옵니다.

부엌과 마당에서 분주하게 음식 만드는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들의 분주함. 생선전, 녹두전 등 부침개의 들기름 냄새가 기웃기웃하면 한입씩 먹거리를 입에 넣어주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생각납니다.
또한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 따라서 추석장, 대목장을 구경가는 기쁨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수많은 인파와 시끌번쩍한 장사꾼들, 사먹고 싶었던 사탕 및 과자가게, 김이 모락모락나는 찐빵집, 고소한 국밥집의 냄내도 좋습니다.

사먹을 돈이 없어 모두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차력사들의 묘기, 약장수의 구수한 입담 등 어린 시절 최고의 구경거리였습니다.

요즘 추석날 거실에서 보는 텔레비젼 연예프로보다 어린 시절 추석장 헤집고 돌아다닐 때가 훨씬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지금이야 대형쇼핑몰이 차로 20, 30분 거리 안에 있고, 물자도 풍부하고, 평일에도 쇼핑센타 등이 상시 열고 있으므로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과거 5일장 얘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생각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추석 다음날은 초등학교 운동회 날입니다. 아마도 전국이 공통적으로 운동회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초등학생들은 여름방학 끝나고 2학기를 개학하면 곧바로 운동회 연습을 했습니다.

행진연습과 곤봉 체조등 매스게임, 전교생 맨손체조 연습, 청백군 계주연습 등 공부는 제켜두고 보냈습니다. 지금이라면 수업 빼먹고 전교생의 운동회 연습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과거 운동회를 추석 다음날 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세끼 식사가 어렸웠던 시절에 추석 때 준비한 음식물이 풍부하고, 더욱이 객지에 돈 벌러 나갔던 청년, 누나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마을 축제겸 학교 운동회를 병행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운동회 날 마음속으로 비오지 말라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운동장에 펼쳐진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면서 세계는 많은 나라가 있구나 생각도 해보았고, 다른 나라들도 우리처럼 운동회를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아뭏든 초등학교 운동회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의 한 마당 흥겨운 축제였습니다. 막상 나는 어른이 되어 내 아이들 초등학생 운동회에 한 번도 참석 못했습니다.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내 처와 애들 외할머니가 갔었습니다.

당시 운동회날 피날레는 폐막식때 발표하던 청군, 백군 종합우승 발표입니다. 우승팀이 외치는 와!와! 하는 함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또한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개인전 달리기, 즉 한번에 6명씩 달리기 시합입니다. 3등까지 상품을 주는데 1등은 공책, 2등은 연필을 받았던 같습니다.

그날 3등 안에 못 들면 온 가족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운동회 끝 순서에 부락별 청년대항 계주가 열렸습니다.

이때 술 한잔 거나하게 취한 부락민 전체가 응원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꼭 청년들끼리 싸움을 하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술 취한 청년들 패싸움이 어린 소년들 눈에 이상하게 비쳤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이게 술주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 음식준비를 하던 어머니 모습이 아련히 그립습니다.
지금 조그마하게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그 때는 얼마나 넓게 생각했던가요?
소년에서 청년, 장년으로 세월의 유장함을 느낍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지식사회로,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 사회로 전환등 문명의 대격변기에 순응할 따름입니다.
가끔 고향의 읍면 체육대회를 가보면 아침부터 음식 먹고 술 마시는 잔칫날로 변해서 과거 어린이들이 왁자지껄하던 운동회가 아닙니다.
추석절 대표 음식인 송편조차도 이제는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 앉아 빚는 것보다, 방앗간이나 백화점에서 사서 먹는 집들이 많아졌습니다.

대가족사회 시절 할머니가 송편을 예쁘게 빚는 손주에게 다음에 예쁜 딸을 낳을 거야 하는 덕담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석과 운동회의 정다운 향수처럼 금년 추석은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만나서 송편을 함께 빚고 따뜻하고 정다운 명절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