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사진관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를 회상하며 |
|
|
|
|
| |
 |
|
| ▲ 예지회 조은옥 |
오늘 날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기기가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산다.
특히나 멋진 풍경이든 인물이든 사진에 담고 싶은 사물을 때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맘껏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맘에 안 들면 삭제하면 그만이어서 편리하기가 더할 나위 없다.
요즘엔 무슨 무슨 스튜디오라고 간판을 내건 곳이 많지만, 예전엔 그냥 사진관이라고 불렀고 나는 시골 면내 사진관 집 둘째 딸이었다.
그 시절 우리 사진관 실내 벽면엔 뺑뺑 둘러 빼곡하게 다양한 사이즈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진 속 사람 중엔 흑백 영화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잘 생기고 멋진 미남 미녀들도 있었고, 순박한 시골 촌부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진, 아기들의 백일 및 돌 사진, 결혼사진, 회갑 사진 등등 다양했다.
내 기억엔 지금처럼 칼라 사진이 점차 대중화 된 건 내가 초등학교 2,3 학년 때인 75년, 76년경으로 기억 된다.
맨날 흑백 사진만 보다가 총 천연색 칼라 사진은 참 획기적이었으며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하지만 각종 원서나 생활기록부, 학교 졸업 앨범 등 많은 종류의 사진들은 그 후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흑백으로 찍었다.
7, 80년대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학 시즌이 되면 아버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증명사진이나 반명함판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검은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암실에서 현상하고, 손으로 일일이 사진을 수정해서 사진이 나오면 그 사진을 한참 물에 담가 약품 기를 빼고, 젖은 사진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뜨끈한 아랫목에 말리셨다.
나는 6학년쯤 되는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을 돕는다고 다 마른 사진을 가위로 반듯하게 오리고 차곡차곡 작은 봉투에 담고 분류하는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위질을 제법 능숙하게 할 만큼 손끝이 야무진 면이 있었다. 아버지는 입학 시즌엔 아예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신 거로 기억한다.
백세 시대인 지금이야 회갑 잔치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그 시절엔 집에서 온갖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 했는데 그 때에도 빼 놓을 수 없는 건 회갑 사진이었다.
회갑을 맞이한 집에선 며칠 전부터 미리 사진 찍으러 와 달라고 예약을 했다.
그 날이 되면 아버지는 커다란 검은 가방에 엄청 큰 사진기며 각종 도구를 챙겨서 출사를 나가셨다.
더운 날씨에 출사 갔다 오시면 아버지는 땀으로 멱을 감으셨다. 어머니는 시원하게 설탕물을 타서 아버지에게 드렸던 드리곤 하셨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진 못하셨지만,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한 분이셨다.
의학이나 법률 쪽에도 밝으시고 언변도 뛰어나셨다.
성격은 급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분이셨다
.
삼십 년 넘게 사진관을 운영하셨지만, 직업에 대한 긍지 같은 것 보다는 오로지 생계유지와 우리 오 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견디셨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멋과 여유를 아는 분이셨고 우리 오남매를 집에 두고 틈만 나면 어머니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동백정이며, 무량사, 부여 궁남지, 구드레를 다니며 여유를 즐기시곤 했다
나는 아기 때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자라 너무도 약골인 탓에 세 돌이 다 되도록 걸음마를 못해서 이 아이가 자라 제대로 사람 노릇이나 할지 부모님은 내가 늘 걱정이셨다고 한다.
첫 돌이 지난 어느 여름날엔 날이 너무 더워 큰 고무 통에 물을 받아서 그 속에서 나를 놀게 하셨는데 사진관에 손님들이 너무 많아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고 손님들이 가고 한가해졌을 때 와 보니 첫 돌배기 아이는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머리는 불덩이였다고 하셨다.
배 타고 먼 군산까지 달려가서 병원을 갔는데 이 아이는 살리기 어렵다고 포기하라고 했다 한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다시 전주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겨우 살릴 수 있었다고 내가 커가는 동안 가끔 말씀하셨고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항상 마음을 못 놓으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데 아버지는 내게 한자로 자기 이름은 쓸 줄 알아야 한다며 찬찬히 순서대로 가르쳐 주셨다. 며칠을 연습하여 나는 일찍부터 한자로 내 이름자는 쓸 줄 알게 되었다.
3,4 학년 때쯤 바람 없는 따뜻한 날엔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며 깔깔거리며 즐겁게 웃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평생을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하셨다. 축구와 가벼운 등산과 스트레칭, 걷기 등 운동을 생활화하셨고 몸에 해로운 술,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으셨다.
그런데 건강이란 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가 보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암이라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시고 고통 가운데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건만 올해 초 끝내는 먼저 가신 어머니 따라 그 먼 나라로 가셨다.
일제 강점기 후반부에 태어나 그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고, 지독한 가난과 맞서 싸우며 삶을 개척해 나가신 아버지.
값없이 주신 그 사랑을 거역하고 아픈 아버지 앞에서 미움과 원망을 쏟아 놓기도 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쌀쌀한 이 가을 아침 회한에 젖는다.
그리운 아버지. 제 마음 이제 받아주시고 어머니 옆에서 오래오래 우리 오 남매 잘 지켜봐 주세요. |
|
|
|
|
 |
전체기사의견(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
|
|
|
| 전체기사의견(0) |
|
|
|
|
931995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