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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어머니

2017년 10월 27일 (금) 15:53:25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보령예지회 최은순

청량한 가을 햇살이 놀다간 아파트의 베란다에 가을밤이 깊어간다.
어둠이 내린 베란다 한 편에 만개한 행운 목 꽃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우리 가족들은 행운목 꽃이 피었다는 것에 대해 환호와 탄성을 터트렸다.
행운목은 ‘100년~1000년에 한번 꽃이 필까? 말까?’ ‘일만 그루 중에 한 그루가 꽃이 필까? 말까?’
‘사람의 일생에 한번 필까? 말까?‘ 하는 귀한 꽃이라는데 우리집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행운 목의 꽃말은 ‘행운’, ‘행복’이라 하여 ‘Lucky Tree'라 한다.
우리나라는 기후가 잘 맞지 않아 꽃을 피우기에 어렵다는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난 행운목 꽃을 보며 꽃말처럼 ‘행운과 행복’이 우리 집에 생기려나? 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렌다.
사람들이 그리도 추구하고 갈망하고 있는 ‘행운’, 행복’이란 무엇일까? 손에 잡히지 않아 끝없이 찾아 나서는 파랑새 같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누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 속에 있는 게 아닐까일과를 마무리하고 꽃향기 진동하는 베란다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행운목옆에 가지런히 자리 하고 있는 장독대로 시선을 옮겨 본다. 행운목의 꽃말이 이미 내 곁에 머물고 있는 행복한 추억이 담긴 어머니의 선물, 장독대의 항아리에 시선이 멈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어느 항아리는 금이 가고 뚜껑과 귀퉁이가 깨져 볼품과 쓸모가 없어 졌지만 접착제로 때워서 마른 물건을 넣어 두고 사용하고 있다.
내가 그 바쁜 와중에도 틈나는 대로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아 주며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다. 이 물건에 애정을 쏟는 까닭은 시공을 초월하여 어머니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십육 년 전, 동짓달 닷새에 어머니는 칠남매 마지막 막내딸인 나를 시집보내며 혼수품에 장독항아리까지 보내주셨다.
항아리 속에는 정성스럽게 담가 놓으신 엄마 표 된장과 고추장, 간장에 어머니의 사랑까지 가득 채워서 보내주시고 또 무엇을 그리 더 주고 싶으셨든지 시댁에서 담가주신 김장도 있으련만 김장까지 담가서 보내주셨다.
철부지 같은 막내딸이 끼니나 제대로 챙겨 먹을지 살림은 제대로 할지 노심초사하시며 일구월심 자식의 행복을 기도 해 주시던 어머니!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내외가 가게를 개업하면서 늘 분주하여 살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을 지켜보시며 우리 집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을 도맡아 담가서 넣어 주셨던 이 장독 항아리. 김치 냉장고가 없었던 그 시절, 어머니는 당신의 딸과 함께 시집보냈던 항아리에 김장 김치를 해 마다 담가 주셨는데 땅속에 묻어 두었던 김치 맛은 입춘이 지나도록 어찌나 맛깔스럽고 감칠맛이 나던지 지금도 군침이 사르르 돌 정도로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어머님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고 나는 늦둥이 막내딸을 임신하여 유별난 입덧으로 심하게 고생하였다.
세 번째 아이었지만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던 날이면 칠남매의 늦둥이 막내딸이었던 나도, 어머님을 이렇게 힘들게 했을까? 라는 생각에 눈물을 쏟곤 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담가 놓으셨던 된장이 몇 해가 지나 달랑 한 보시기 정도 남아 있었는데 그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을 먹고 그렇게 유별스럽던 입덧이 가라앉았다.
그 후 몇 번의 이사를 거치고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장독이 별로 쓸 일도 없어졌고, 새집에는 어울리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사 할 때마다 제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물건이기에 번거롭고 신경이 쓰인다며 가족들은 시골 본가에 보내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장독을 끝내 새 아파트로 옮겨와 양지바른 베란다에 장독대를 만들어 놓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베란다에 어울리지도 않는 골동품 같은 장독을 보며 어머니와의 추억에 잠겨본다.
‘행운과 행복’을 가져온다는 행운목꽃이 활짝 피어난 오늘 같은 날! 행운목의 진한 꽃향기를 맡으며 ‘행운’은 이미 60년 전 어머니와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루어 졌고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으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통해 내 곁에 머물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행운과 행복을 몰고 온다는 행운목 꽃이 피었다가 질지라도 추억속의 어머니는 내 일상에서 행복한 꽃으로 늘 피어 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