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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작가라 부르는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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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지회 신 경 숙 |
혼자여도 좋지만 둘이 걸어도 참 좋은 아침 산행길이다. 신록이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집안에서 제 아무리 쓸고 닦고 정리 정돈을 한들 이곳에서의 쾌적함은 감히 따라올 수가 없다
우리가 연신 손을 뻗어 자연 앞에 탄복하는 이유다. 그녀는 나를 작가라 칭했다.
내가 소속된 글쓰기 모임에서 해마다 발행하는 동인지를 건네준 그날 이후부터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도 작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뭔가 끄적이는 게 좋았을 뿐?글을 잘 쓰고자 딱히 노력하지 않았고 편안함에 길들어 그저 글쓰기는 취미쯤으로 여기며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나였다.
고로 끝내?마뜩지 않아 하는데도 그녀답지 않게 고집을 부리며 현재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는 「무비&톡」 이란 동아리에서 만나 매주 화요일마다 도서관에 모여 영화를 보며 알게 된 사이다.
비치된 영화 중 한편을 감상하고 각자의 소감을 토대로 이야기하며 영화 속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여운이 남는 영화는 집에 돌아와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을 유튜브로 검색해 보며 또 한 번 빠져들기도 했다.
대체로 흘러간 명화를 즐겨보다 보니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 소재는 무궁무진했고 함께하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속에서 건강을 염려할 나이가 되었음을 한탄하던 동갑내기 우리는 만남의 연장선으로 매주 목요일에 올레길을 걷기로 했다.
산행이 있는 날은 그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목요일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바깥 날씨를 살피는 것이 나의 첫 일과가 되었다. 정성껏 함께 먹고픈 간식거리를 챙기고 서로에게 읽어주고픈 책 한 권을 챙겨 나간다.
만남의 장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볼 때면 법정스님의 글귀처럼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참 해맑다. 땀이 흠씬 나게 걸은 뒤 우리는 산 중턱에 있는 정자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간식과 차를 나눠 마신 뒤 한 시간 가량 서로에게 책을 읽어준다. 첩첩산중에 들어앉은 듯 어느 곳에 시선을 던져도 온통 초록인 그곳에서 책을 직접 읽는 것보다 읽어주는 책에 집중하다보면 그 느낌이 몇 곱절로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는 다방면으로 참 박학다식하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위트 있고, 올곧고, 게다가 주고받는 말과 문장을 엮으면 그대로 책이 되고 시집이 될 만큼 말솜씨도 글 솜씨도 수준급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월등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주 편하다기보다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결코 나쁘진 않다.
마치 코르셋을 갖춰 입은 느낌이랄까. 닮은 듯 전혀 닮지 않은 우리가 쌍둥이자매처럼 잘 어울리는 건 내가 그녀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녀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TV를 보는 대신 그녀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똑같이 소장한 시집을 필사하고 멋진 것이나 맛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떠올라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끝없이 메시지를 던져 교감을 나눈다. 그녀처럼 나도 착하고, 책을 많이 읽고, 악기도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따라쟁이임이 분명하다.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을 읽는다.
또한 그 사람이 읽고 좋았다고 권하는 책이면 기를 쓰고 읽는 편이다. 그 책을 바탕으로 수다 떨며 소통하는 것 역시 무척 즐겁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처럼 가슴 떨리는 일이 또 있을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점점 나 또한 물들어가는 모습으로 문득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을 땐 로또에 당첨이라도 된 듯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
이것저것 소속된 곳이 많은 현대인답게 얼핏 보면 옹골지게 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발만 걸쳐놓았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내 텅 빈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 내게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진 과분한 선물이다.
나는 내가 닮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다.
작가라고 불러줌으로써 진짜 작가의 길로 나아가게 채찍질 해주는 그녀가 고맙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 이 글을 다시 접하게 되는 그 날이 오더라도 지금처럼 우리 함께 영화를 보고 산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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