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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는 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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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령 예지회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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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힘든 일이 일주일 동안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딸의 결혼피로연을 치르고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을 준비 하던 중에 아버님이 입원하셨다고 연락을 받았다. 일반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야할 것 같다고 한다. 아침 일찍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갔고 걱정하시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서 치료 끝나면 완쾌되어 집으로 곧 오실 거라고 위로를 해드렸다.
큰 병원으로 옮긴지 이틀 만에 영면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 끊고 나서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나니 생각과 판단 능력이 정지된 멍한 상태로 한참을 서있었다.
사무실과 농장을 아는 분께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서울 갈 준비를 하면서 가방을 싸고 무엇을 넣었는지 몰라서 쏟고 필요한 것을 넣었는지 몰라서 또 쏟고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하고 가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고 발이 떨려서 엑셀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자꾸만 '왜?' '왜? 아버님이 왜.....'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머리를 혼미하게 만든다. 또 한편 머릿속에서는 사흘이면 딸의 결혼인데 과연 진행할 수 있을지 미뤄야할지 생각은 복잡하고 길은 멀고도 멀었다. 서울은 벌써 석양이 지고 잿빛 하늘이 내 마음처럼 변해가고 있다.
안암동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아버님의 영전 앞에 서는 순간 임종도 못 본 둘째며느리의 회한에 찬 가슴이 무너진다. 준비되지 않은 아버님과의 이별을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니.....
친손녀와 예비 손주 사위가 인사를 하려갔을 때만해도 결혼식장 꼭 간다고 좋아하셨다는데 어떻게! 며칠사이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늘 아버님이 우리들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마음 든든한 힘의 원천이었다. 말 수가 적은 아버님이지만 둘째며느리를 딸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이번 추석 이후로 딸의 혼사로 자주 가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한 달 전에는 아파서 늘 다니시던 병원에 갔다 왔다고 할 때 비뇨기과로 가야한다고 말씀 드렸었다. 약을 드시고 좀 나은 것 같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었다. 그 이후에도 병원 잘 다니시는지 확인을 제대로 못한 것이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송추 운경공원 묘지에 모시고 오면서 아버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되새겨 본다. 지난 추석에 책장에 꽂혀있는 족보 책을 가리키며 몇 권 몇 페이지에 우리가족이 기록되어있다고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아버님 고향인 황해도 연백에서 살던 동네를 그림 그리듯이 말씀하실 때는 그리움이 묻어났었다. 가슴에 묻어둔 실향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털어내시면 좋겠다는 생각과 고향 연백에 대한 추억을 내가 글로 써 드리고 싶어서 여러 차례 여쭤보곤 했었다. 고향이 지척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아픔을 좀 더 헤아리거나 아버님의 마음을 섬세하게 응대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시댁에 함께 살 때 아버님과 항상 아침 겸상을 했다. 소식을 하시는 아버님께 따뜻한 밥과 새로 끓인 국과 반찬을 정성스레 차려 드리면 식사를 맛있게 드신 후 커피를 같이 마시면서 아버님과 신문을 나눠서 읽고 소소한 얘기를 나눴던 일상의 추억이 떠오른다.
자전거 타고 출타하셨다 귀가하시는 시간은 거의 정확하시기 때문에 나는 길모퉁이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었다. 기다리다가 함께 올 때면 며느리 걸음에 맞춰 주시느라 자전거를 끌고 오시던 기억 또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버님은 “그래 너처럼 살면 된다. 고생이 많다.” 이런 말씀을 들려주실 때마다 힘든 일상은 싹 씻어 내곤 했었다. 바쁜 일상이 최선인양 살다가 아버님과의 준비 없는 이별로 정신이 번쩍 든다. 더 자주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 더 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세상을 바르게 사시고 남들에게 절대 민폐 끼치는 일 없으셨고, 쓰레기와 분리수거 또한 완벽하게 처리하시는 꼼꼼함과 자상한 면이 있으신 아버님.
도봉산 약수 뜨러 가시는 것이 유일한 사람들과의 소통이셨던 아버님. 약수터 갔다 오시면 늘 오던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며 어디가 아픈 건지 세상을 떠난 것인지 걱정을 하시던 아버님. 91세에도 조간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으시던 규칙적인 일상의 아버님. 이제 이런 아버님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건강하지 못한 시어머님을 병원 갈 때 동행하고 식사를 챙겨주시고 돌봐 주셨는데 시어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시는 길 또한 편안하지 않으셨을 아버님.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지만 꼭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아버님 진정 존경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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