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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신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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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령예지회 신 경 숙 |
살다보면 다 큰 어른들에게도 교육이 꼭 필요한 때가 있다. 사랑하여 결혼했건만 긴 세월 함께하다 보니 사랑은 퇴색되고 의무만 남아 권태로운 삶.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결단이 필요한 즈음, <부부공감 캠프>에 참가했다. 걱정이 많았다. 형식적인 교육과 뻔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스킨십을 유도하는 꼭두각시놀음이 될까봐. 그런 거 딱 질색인 남편을 화나고 지루하게 만들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 억지스러운 융화는 나 또한 원치 않는 바였다. 그러나 더 행복해지기 위해 캠프에 참가한 7쌍의 부부가 함께했던 1박 2일은 우리를 신혼시절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부갈등 유형을 알아보며 철옹성 같았던 불신의 벽은 허물어지고 닫혔던 마음은 무장해제 되었다.
우리의 말문을 트게 해준 교수님의 특유의 편안함은 교육장을 금세 신뢰와 친밀감이 형성되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들이 하는 말들을 스펀지처럼 받아주며 공감요법과 칭찬요법으로 살짝 터치해주면, 너나 할 것 없이 엄마를 만난 어린 아이들처럼 그간의 서러움을 털어놓기에 바빴다. 그렇게 시원하게 울고 웃으며 우리 모두는 공감했고 이제껏 남들 앞에 털어놓지 못했던 은밀한 상처까지 공유하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호텔방에 들어섰다. 수줍음 많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단꿈을 꾸라며 아기자기하게 방을 꾸며준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가 감동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자동으로 커튼이 젖혀지며 머드광장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파도소리도 들렸다. 향기를 가득 머금은 장미꽃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천장에는 하늘거리는 리본을 맨 예쁜 풍선들이 아기천사들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는 숙제로 내준 사진을 찍기 위해 은은한 조명 아래서 포즈를 취했으나 ‘셀카(self camera,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촬영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에 익숙지 않다보니 사진이 이상했다. 욕심내어 예쁘게 잘 나올 때까지 계속 포즈를 취하고, 찍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장난치며 자연스레 활짝 웃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가히 좋아하지 않는 남편인데 아무리 숙제라지만 수없이 찍어대는 사진 촬영에 순순히 응해줘서 고마웠다.
두 번째 숙제로 생애곡선을 각자 그려보았는데 확인하는 순간 충격이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훨씬 긴 신혼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우리 사이는 서서히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무절제한 남편의 지출은 나를 향한 시위 같았고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늘 아쉬울 게 없는 건 남편이었고, 남편밖에 몰랐던 나는 졸지에 미아가 된 듯 외롭고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팠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식대로 맘껏 누리며 살기에 행복의 가도를 달릴 줄 알았던 남편의 생애곡선은 나와 똑같이 사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불행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결혼하고 같이 자리에 누웠을 때’, 내 인생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여보고 싶냐는 물음에는 '왜 이렇게 살았나.',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아내의 마음을 얻고 싶다.’고 답한 남편을 보니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밀려들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불만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 사랑은 이렇듯 한결같이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얼음장에 가려 차디차게 식은 줄로만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 부부의 표정은 전날 교육장에 들어설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뼛속까지 시원하달까. 넓게 펼쳐진 대천해수욕장의 백사장만큼이나 우리의 마음도 크고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과 편지글이 담긴 액자, 나의 핸드백과 장미꽃, 그리고 풍선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교육장을 나서며 여기 오길 참 잘했다고 웃어주는 남편이 믿음직스럽고 고마웠다. 살다가 힘든 날 올지라도 곁에서 묵묵히 나의 짐까지 평생 짊어지고 가줄 것만 같아 결혼을 결심했던 예전의 그 모습처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희망에 부풀어 두 손 꼭 잡고 집에 들어서니 두 딸이 폭죽을 터트렸다. 11월 20일. 23년 전 우리가 하나 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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